발행호 448 호
2014.06.03
마흔아홉 나 영순, 추억을 오늘에 담다
마흔아홉 나 영순,
추억을 오늘에 담다
평범한 주부 나 영순. 그녀 역시 한때는 꿈 많던 소녀였지만, 결혼을 하고 가족을 위해 일만 하다 자신을 잃어버렸다. 그렇게 맞이한 마흔아홉 번째 생일. 그녀가 엄마와 아내라는 이름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을 위한 여행에 나섰다. 카메라 하나 덜렁 메고서.
글과 사진 박은경
첫 번째 목적지, 전남 영광
법성포에서 어린 영순이를 만나다
길은 나섰는데, 막상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러고 보니 혼자 하는 여행은 처음이다. 어디로 갈까 잠시 망설이다 이내 전남 영광으로 향했다. 영광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유년시절의 추억이 깃든 장소다.
온 가족이 서울로 이사 온 게 학교 들어가던 해였으니까, 벌써 40년이 넘었다. 그 사이 딱 한 번 영광에 갈 일이 있었는데, 이마저도 어릴 때 부모님을 따라갔던 터라 가물가물 아련한 추억이 됐다.
영광에서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은 내가 살던 법성포였다. 워낙 오래전 일이라 어디가 어떻게 변했는지 요목조목 집어내기 어려웠다. 다만 코끝에 살랑거리는 굴비 냄새가 반가울 뿐이었다. 옛날엔 이 냄새가 왜 그리 싫었었는지. 새로 산 원피스에 고약한 냄새가 밸까 노심초사하던 모습이 떠올라 피식 웃음이 났다.
다시 찾은 법성포는 아늑하고 정겨웠다. 도로를 따라 늘어선 굴비가게에는 줄줄이 엮인 굴비들이 입을 쫙 벌리고 있었다. 또 포구 앞 좌판에는 통치(새끼민어)며 박대 등이 햇볕에 몸을 널어 말리고, 바닥에선 살 오른 꽃게가 파닥파닥 집게를 움직이며 사람들을 불러 모았다.
나는 내 앞에 놓인 풍경들을 놓칠세라 열심히 셔터를 눌러댔다. 그러다 어린 시절 엄마가 고구마처럼 쪄서 참기름 한 방울 똑 떨어뜨려 주던 농어알을 발견했고, 순간 알 수 없는 감정이 울컥 올라와 그만 카메라를 내려놓았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려 숲쟁이꽃동산에 올랐다. 법성포 앞에 조성된 숲쟁이꽃동산은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와 법성포 숲쟁이느티나무군을 잇는 숲이자 산책로다.
산책로에 오르자 법성포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신기하게도 보이는 건 분명 바다인데, 걷는 내내 짠 내 대신 청량한 나무 향이 온몸에 스며들었다. 그리고는 마치 예기치 못한 선물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한결 좋아졌다.
내친김에 숲쟁이꽃동산 너머 백제 불교 최초 도래지까지 걷기로 했다. 입구에 놓인 설명에 따르면 384년에 인도 승려 마라난타가 법성포에 처음 발을 디디면서 백제에 불교가 전해졌다고 한다. 이 때문에 법성포의 ‘법(法)’은 불교를, ‘성(聖)’은 성인인 마라난타를 뜻한다고도 했다.
안에는 마라난타가 법성포로 들어와 불법을 전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부용루와 탑원, 간다라유물전시관, 사면대불상 등이 있었다. 한국 전통 사찰과 달리 인도의 간다라 미술 양식과 유물을 볼 수 있어 이채로웠다.
반갑다, 불갑사와 백수해안도로
법성포를 통해 백제에 도착한 마라난타는 이 땅에 최초의 사찰을 세웠는데, 바로 불갑사다.
사실 나는 불갑사가 이렇게 대단한 의미를 지닌 절인지 몰랐다. 내게 있어 불갑사란 그저 엄마 아빠 손잡고 자주 들르던, 어린 시절 놀이터였다. 그곳엔 뛰어놀기 좋은 숲이 있었고, 따라 그리고 싶은 꽃이 많았을 뿐이었다. 또 창살은 왜 이리 예쁜지, 어린 마음에도 욕심이 날 정도였다.
오랜만에 만난 불갑사는 내 기억처럼 아름다웠다. 다만 내가 훌쩍 커버려서인지, 아니면 주변 나무가 쑥쑥 자란 탓인지, 그때는 어마어마하게 커 보이던 대웅전이며 만세루가 아담하게 다가왔다. 절을 한 바퀴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는 대웅전 옆 돌계단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경내는 나뭇잎 바스락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조용했고, 깜빡 잠이 들고 말았다. 그러다 소풍을 나온 유치원 아이들 소리에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고 보면 예나 지금이나 이곳 불갑사는 뛰어놀기 좋은 놀이터인가 보다. 게다가 최근엔 주차장을 오토캠핑장으로 조성해 운영한다고 하니, 다음번에 꼭 한 번 이용해봐야겠다.
절에서 나와 다시 바다로 향했다. 이번 목적지는 백수해안도로. 한국의 아름다운 도로를 얘기할 때마다 늘 빠지지 않은 영광의 대표 명소다.
해안도로를 가리키는 표지판을 지나고, 곧이어 등 푸른 바다가 펼쳐졌다. 신기한건 분명 서해인데 마치 동해안을 끼고 달리듯 호쾌한 풍경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고 보니 지금껏 서해를 얕고 탁한 바다로만 생각하고 있었다. 순간 잘 알지도 못하면서 고정관념을 가지고 섣불리 생각했던 내가 부끄럽게 느껴졌다.
잠시 쉴 곳을 찾아 두리번거리고 있는데 마침 주차장이 보였다. 차를 세우고 주변을 살펴보니 왼쪽 언덕엔 칠산 전망대가, 오른쪽 아래엔 바다로 향하는 ‘건강 365계단’이 있었다.
올라갈지 내려갈지 망설이다 전망대에 올랐다. 팔각정으로 이뤄진 3층 전망대에서는 칠산 바다가 훤히 내려다보였다. 막힌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는 듯했다.
이 기분을 오래 간직하고 싶어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느낌만큼 흡족하게 찍히지는 않았지만 어쩐지 뿌듯한 마음이 들어 기분이 좋았다.
다시 차에 올라 좀 더 해안도로를 따라 달렸다. 이번엔 노을전시관이 나타났다. 오로지 ‘붉은 노을’만을 주제로 연 전시관에는 사진 속 노을, 음악 속 노을, 문학 속 노을 등 예술과 문화에 깃든 다양한 노을이 모여 있었다.
수많은 노을을 만나고 나니 진짜 노을이 보고 싶어졌다. 전시관을 나와 10여 분을 더 달려 백암해안 전망대의 노을정에 닿았다. 노을이 아름다운 백수해안도로에서도 특히 운치가 있기로 소문난 곳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붉은 노을이 수면을 짙게 물들였다. 바다는 그렇게 한참 동안 열병을 앓았다.
두 번째 목적지, 전남 나주
마흔아홉에 다시 떠난 수학여행, 국립나주박물관
학창시절, 공부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역사에는 흥미가 많은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경주로 떠났던 수학여행이 유독 기억에 남아 있었고, 이번 여행의 목적지로 마지막까지 경주를 마음에 두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내 고향 영광에 가기로 마음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경주는 제외됐다. 이는 두 가지 이유에서였는데, 첫째는 영광에서 너무 멀고, 두 번째는 다름아닌 나주 때문이었다.
경상도에 경주가 있다면 전라도에는 나주가 있다. 나주는 경주나 공주·부여에 못지않게 한반도 고대 역사를 구성하는 중요한 지역이다. 그러나 그동안 나주는 물론 전남지역 일대엔 번듯한 박물관 하나 없었고, 이 때문에 지역 역사와 유물이 여기저기 흩어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홀대 아닌 홀대를 당해야만 했다. 이런 속사정을 알고 있던 나로서는 국립나주박물관의 개관 소식만으로도 나주에 갈 이유는 충분했다.
전남지역의 첫 국립박물관인 나주박물관은 고대 무덤이 무리를 이루고 있는 반남고분군 옆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나는 너른 들판에 불쑥 솟은 고분들은 잠시 미뤄두고 먼저 박물관 안으로 들어갔다.
1층 제1전시실에는 구석기에서부터 조선시대까지의 유물이 있었는데, 특히 마한시대와 옹관묘 문화를 집중 조명하고 있었다. 옹관묘는 큰 옹기와 작은 옹기를 맞대거나 결합한 것으로 큰 것은 합쳤을 때 길이가 280cm, 두께는 10cm가 넘는다고 했다.
한쪽엔 나주 신촌리 금동관이 전시돼 있었다. 금동관은 1917년 반남면 신촌리 9호분의 옹관묘 안에서 발굴된 유물이다. 마땅한 전시 공간이 없다는 이유로 국립중앙박물관 등을 떠돌다 지난해 이곳 국립나주박물관이 생기면서 96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지하 1층에 마련된 제2전시실은 개방형 수장고와 고고학 체험시설로 꾸며져 있었다.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건 개방형 수장고였다. 보통 금지구역으로 통하는 수장고에 대형 유리창을 설치하여 관람객들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했다. 국립박물관으로는 최초의 시도라는 설명이 관심을 끌었다.
박물관에서 나와 맞은편 고분군으로 향했다. 이렇게 큼직한 봉분은 경주 말고는 처음이었다. 잘 정돈된 분묘 사이를 걸으며 전시관에서 봤던 설명을 하나하나 되새겼다. 주변에는 빛깔 고운 꽃들이 심어져 있었다. 수천 년을 사이에 두고 삶과 죽음이 공존한 모습에 묘한 기분이 들었다.
고구려에서 놀다, 나주영상테마파크
이번엔 나주영상테마파크로 향했다. 이곳에서 촬영된 드라마 ‘주몽’을 워낙 재밌게 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고구려의 건국 시기 모습을 볼 수 있다는데 솔깃했다.
표를 끊고 들어서자 순식간에 2000년 전 세상이 펼쳐졌다. 제일 먼저 만난 건 제1성문인 해자성이었다. 흐르는 물 위로 다리를 내리고 올릴 수 있도록 설계된 ‘현문’이었다. 안내문에 따르면 우리나라 역사상 유일하게 현문이 존재했던 장소가 바로 나주라고 한다.
길은 해자성을 통과해 졸본부여궁으로 이어졌다. 졸본부여궁은 고구려 초기의 왕궁으로 고구려 건국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한다. 궁 앞으로는 저잣거리가 조성돼 있었다. 흔히 보던 기와나 초가의 모습이 아니라 주로 산간지방에서 볼 수 있는 너와집으로 꾸며져 느낌이 새로웠다. 간단히 요기를 할 수 있도록 매점과 식당으로 운영되는 곳도 있었다. 또 고구려 장군 옷을 입고 기념 촬영을 하거나 도자기 만들기 체험도 가능했다.
제2성문을 지나 고구려궁과 태자궁, 신단을 차례대로 둘러봤다. 그 규모나 생김새가 조선의 것과는 많이 달라 생소했다. 특히 고구려궁에는 다른 건물과 차별된 특유의 웅장함과 위엄마저 서려있었다.
고구려궁 맞은편 성루에서는 나주평야와 영산강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다듬어지지 않은 자연과 옛날 양식의 집들이 서로 어우러져 고구려의 어느 마을에 와 있는 듯 느껴졌다.
휴식이 필요해, 전라남도산림자원연구소
‘전라남도산림자원연구소’라니. 이름만 보면 영 뜬금없어 보이는 이곳을 찾게 된 건 순전히 한 장의 사진 때문이었다. 우연히 보게 된 그 사진 속에는 메타세쿼이아 가로수가 빼곡하게 줄지어 서 있었고, 나는 너무나도 당연하게 전남 담양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사진 아래에 적힌 내용은 사뭇 달랐다. ‘사진 촬영=나주 전라남도산림자원연구소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길’. 나는 생각지도 못한 지명에 놀라며 다시 한 번 사진을 들여다봤고, 언젠가 나주에 가면 반드시 들리겠노라 다짐했었다.
전남산림자원연구소를 찾아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는 황급히 내렸다. 산책로 양편에 늘어선 메타세쿼이아들이 기다렸다는 듯 두 줄로 서서 나를 맞았다. 사람 하나 없이 쭉 뻗은 그 모습에 ‘와~’라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메타세쿼이아 길의 총 길이는 500여 m. 폭은 담양의 것보다 좁아 훨씬 아늑한 느낌이었다. 게다가 비교적 덜 알려져 호젓한 여유를 부리기에도, 또 기념사진을 남기기에도 더없이 좋았다.
가로수 길 주변의 산책로도 호사를 선사했다. ‘치유의 길’ ‘숲내음길’로 불리는 산책로에는 전망 좋은 벤치가 곳곳에 마련되어 편안히 쉬기에 좋았다. 또 은청가문비, 들메나무, 개잎갈나무 등 생소한 나무가 많아 이름표를 훑어보는 재미도 쏠쏠했다.
영순 씨의 카메라에 걸린 또 다른 나주
다시 내 자리로 돌아가야 할 시간. 아쉬운 마음에 마지막까지 카메라를 내려놓지 못했다.
영산포등대
내륙하천에 남아있는 국내 유일의 등대. 1915년 일제가 영산강의 수위를 측정하기 위해 설치했다. 이제 배가 드나들지 않아 수위를 측정할 필요는 없지만 저녁이 되면 여전히 불을 밝힌다. 등대 앞에는 황포돛배 선착장이 있다.
동문 밖 석당간
나주가 풍수상 배의 형국이어서 돛대 형상을 만들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절 앞에 세웠던 당간을 닮아 석당간으로 일컬어지지만, 옛 지도엔 석장(石檣·돌 돛대)으로 표시돼 있다. 본디 성 밖에 석장을, 성 안쪽(동문 옆)에 목장(木檣)을 세웠다고 하나 목장은 없어졌다. 보물 제49호다.
나주목사 내아
나주 지방 관리인 목사가 살던 살림집이다. 일제강점기 때 나주읍성과 함께 많이 훼손된 목사내아를 전면 해체, 복원해 현재는 숙박이 가능한 전통문화 체험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다. 숙박 요금은 5만원부터 15만원까지. 관람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동점문
옹성이 설치된 2층 문루. 과거 영산강 뱃길도, 한양에서 오는 육로도 동문으로 이어졌다. 고려 말 정도전이 ‘친명 정책’을 주장하다 나주 회진현(현재 다시면 일대)으로 귀양 올 때도 이 문을 지났다. 문루 2층에 그가 당시 문루에 올라 읽었다는 ‘유부노서(나주 원로들에게 이르는 글)’를 편액으로 만들어 걸었다. 현판 글씨는 도올 김용옥 씨가 쓴 것이다.
나 영순의 맛집 노트
영광 법성포 굴비정식
법성포까지 왔는데 굴비를 못 먹고 가면 아쉽다. 법성포의 바람이 말린 짭조름한 굴비 한 마리면 밥 한 그릇쯤은 뚝딱이다. 말린 굴비를 찢어 고추장에 재었다 먹는 고추장 굴비도 별미다. 법성포에는 굴비백반이나 굴비정식을 차리는 식당이 여럿 있다. 주문하면 밥 도둑 굴비와 함께 신선하고 맛깔스러운 반찬이 한 상 가득 나온다. 식당에 따라 1인분 주문이 가능한 곳도 있고, 4인이 먹을 수 있는 ‘한 상’ 기준으로 팔기도 한다.
동원정 061-356-3323, 007식당 061-356-2216, 토우 061-356-8425, 명가어찬 061-356-1313
나주 송현불고기
얇게 저민 돼지고기에 간장, 고춧가루, 참기름, 마늘, 생강, 양파, 설탕, 배를 넣고 재운 뒤 숙성시켜 연탄불에 굽는다. 주방에서 1인분씩 구워 한 입 크기로 잘라져 나오는데, 식어도 잡냄새가 나지 않아 끝까지 맛있게 먹을 수 있다. 불 맛이 뛰어나고 고기의 질감이나 맛도 수준급이다. 밑반찬 격으로 내놓는 채소와 시래깃국, 김치, 된장 등도 좋다. 동신대학교 정문에 위치했다. 061-332-6497
나주 곰탕
나주 곰탕은 말갛다. 소의 뼈 대신 양지나 사태 등 고기 위주로 육수를 내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물이 맑고 달고 시원하다. 반찬이라고는 김치와 깍두기가 전부지만 진하고 고소한 곰탕에 이보다 더 잘 맞는 궁합은 없다. 뜨끈한 국밥 한 숟가락을 떠서 그 위에 빨간 김치나 깍두기 한 점을 얹어 먹으면 느끼한 맛은 전혀 없고 달콤하면서도 구수한 곰탕의 제맛을 느낄 수 있다.
남평할매집 061-334-4682, 나주곰탕노안집 061-333-2053, 나주곰탕하얀집 061-333-4292, 탯자리나주곰탕 061-332-3377
출처 한국관광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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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비는 흰살 생선으로 지방이 적어 체중감량 식단에 단백질 공급식품으로 활용하면 좋으며 원기회복,
피로회복에 좋으며 특히나 굴비는 양질의 단백질이 풍부하여 몸이 쇠약할 때나 피로회복에 도움을 줍니다.
또한 야맹증이 있는 분들에게는 굴비가 좋은 음식으로 굴비가 가진 비타민 A는 야맹증 예방에 좋습니다.
음식 궁합으로는 고사리가 좋으며 굴비찌개에 고사리를 넣으면 굴비에 부족한 섬유소를 보충할 수 있어 궁합이 맞습니다.
사상체질학적으로 굴비는 태음인에게 좋은 음식입니다.
태음인에게 좋은 음식은
소고기, 사슴고기 도라지 마늘 조기, 굴비, 쌀, 현미, 찹쌀, 수수,콩나물, 미역, 멸치, 북어 등 이 있으며
태음인에게 해로운음식으로는
팥, 보리, 메밀, 검은깨, 앵두, 파인애플, 돼지고기, 닭고기, 개고기, 낙지, 문어, 조개, 등이 있습니다.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가마실길 1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로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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